All happy families are alike, each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나는 그 책을 털 끝 하나 건드려보지도 않았으면서, 항상 그 문구를 되뇌며 다녔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다르다."
..
툭 털어 놓고, 아무렇지 않은 듯 발설해 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쉽사리 맘을 열지 못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게 될 어떤 사람.
그 단 한 사람을 만나면, 그 때가서 이야기 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결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나는 마음을 열게 되는 사람에게 하는 첫 단계의 의식으로
내 비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제각각 다른 불행의 요소들이 적절하게 조합된 그 이야기들은
막장드라마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소재가 될 성도 싶었다.
내가 비밀이야기를 마치자,
이야기를 듣던 그 역시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도 실제의 삶이 아니었다면 쉽사리 상상하기 힘든 전혀 새로운 조합의 이야기였다.
둘은 비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의식을 통해 서로의 친밀을 확인했다.
내가 내 비밀 이야기를 꺼내면서 후회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적당한 관계를 적당하게 유지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하나의 패를 꺼내지 않으면
상대의 이야기도 끌어낼 수 없다는 것.
영원히 적당한 관계의 간격을 좁힐 수 없다는 것.
너를 조금 더 알고 싶다면,
내 것을 털어버리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그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다는 것.
어쩌면 의식을 거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너를 믿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기억의 짐을, 침묵의 무게를 짐승 냄새 나는 풀숲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관찰기 > 생활 관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론성지 가는 길 / 14.11월의 어느날 (0) | 2015.01.04 |
---|---|
이별의 書. / 14년 6월의 어느날. (0) | 2014.11.19 |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0) | 2014.10.28 |
슬프다, 회자정리. (0) | 2014.10.05 |
내가 블로깅을 하는 이유 / 앞바리 오그리 토그리 (0) | 2014.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