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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기/IR관찰기

근대국가의 시작 - 베스트팔렌 조약(배경)

지난 번 포스팅에서 '국가'라는 개념이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했었죠.

IR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근대 국가'의 시작을 주로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계사 혹은 서양사에 관심이 있으신 사람들은 이 조약의 이름을 꽤나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베스트팔렌 조약이 나오게 된 30년 전쟁의 배경과 그 결과로 맺어진 베스트팔렌 조약의 내용, 

그리고 이것이 갖는 의미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유럽 지역은 약 1000여년 정도 이른바 '중세'라는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이렇게 기나긴 시간을 단순히 '중세'라는 카테고리에 묶어 놓는 것이 그리 현명한 일은 아니지만, 

관례가 그러하니, 우선은 저도 이러한 범주에 이 시기를 넣어보도록 하죠.)

'중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바로 '봉토'를 매개로 주군과 가신이 쌍무적인 계약관계를 맺게 되는 '봉건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차후에 정리해보도록 하고, 

여기서는 봉건제도의 결과로 주군과 가신들이 중층적인 지배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만 지적해 두겠습니다.

그 결과로 중세의 지배자들은 그다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지배자가 강력하지 못했기 때문에 봉건제도를 시행한 측면도 있고, 

봉건제의 결과로 왕권이 강화되지 못한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대략 1500년대를 지나면서 서서히 각 지역을 평정하기 시작한 강력한 '왕'들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 등지가 그 대표적인 지역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독일 등지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중세적인 성격의 정치체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볼테르는 신성로마제국을, 신성하지 않고, 로마가 아니며, 제국이 아니라고 했었죠.)

상이한 성격을 가지는 두 유형의 정치체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갈등하다가 결국에는 전쟁까지 치닫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30년 전쟁이었습니다.

흔히 이 전쟁을 '신교' 국가와 '구교' 국가들의 종교적인 전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시대가 변하고, 소위 말하는 근대적인 변화들이 발생하면서 

구시대의 체제와 새로운 시대의 체제가 정면충돌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해 보입니다. 

종교는 단지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의한 충돌을 촉발시킨 요인이었던 것이지요.

이는 '구교'의 대표격이었던  프랑스가 '신교' 국가들의 편을 들어 전쟁에 참여한 모습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추기경이었던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는 

'국가 이성'이라는 말을 사용해가면서 종교적 정의와 국가의 행동에 구별을 가하게 됩니다.

(이때 '국가이성'이란 우리가 오늘날 '국익'이라고 말하는 개념과 같다고 보면 쉬울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이들 국가들은 3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치열하게 싸웠고, 

그것을 종결시키는 조약으로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내용의 특성상 그동안 서서히 발전해온 근대국가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조약이랄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과 의의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으로 넘기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