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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기/IR관찰기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 이유. / 영화 더 록.

꽤나 오래된 영화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96년, 그러니가 대략 20여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 더 록(The Rock)

이제는 반 백살이 다 되어버린 니콜라스 케이지와 멋진 숀 코네리 할아버지가 나오신 영화이죠.

영화는 (많이들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대략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에 대한 국가의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게 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미 해병 장군이 자신의 부하들을 끌어모아 과거 형무소로 악명이 높았으나,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버린 알카트라즈라는 섬을 장악하고 이곳에 관광 온 사람들을 인질로 삼습니다.

그러면서 희생된 장병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준비한 미사일을 사람들이 많은 도심에 발사하겠다고 경고하며 정부와 협상을 시작하려 합니다.

이 때, 정부 관료로 나온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지요.

"우리는 테러리스트들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입장은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공식적으로) 똑같이 적용되는 입장입니다.

왜 그럴까?

(아마 정답을 알고 계신 분들이 많겠죠.)

저도 제 나름의 생각을 이야기 해 볼 수 있겠습니다마는 보다 멋지게 표현해보기 위해서 

Neumann 이라는 분이 포린어페어스(Foregin Affairs)에 기고하신 2007년의 글을 인용해보고자 합니다.


The argument against negotiating with terrorists is simple : democracies must never give in to violence 

and terrorists must never be rewarded for using it.

Negotiations give legitimacy to terrorists and their methods and undermine actors who have pursued 

political change through peaceful means. 

Talks can destabilize the negotiating governments' political systems, 

undercut international efforts to outlaw terrorism, 

and set a dangerous precedent.

/ Neumann Peter R, Foreign Affairs No.86. 1(Jan/Feb 2007), p.128


간단히 해석해보면, 

1. 민주국가는 폭력에 굴복해서는 안되고,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함으로써 보상을 얻을 수 없게 해야한다. 

2. 테러리스트들과의 협상은 이들의 폭력적인 방식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는 행위자들을 약화시킨다.

3. 테러리스트들과의 대화는 협상하는 정부의 정지적 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테러리즘을 불법화하려는 국제적 노력을 약화시키고,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헥헥..


뭐 멋지게 표현은 됐습니다만, 쉽게 얘기해서 나쁜 짓 한 사람하고 대화하는 건, 

나쁜 짓 한 것을 용인하는 꼴이 되니, 그러지 않겠다는 것 정도가 되려나요?

무튼,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겠다는 것은 (위에 인용한 글에서도 인정하는 바 이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무시됩니다. 

그러니까, 민주국가들도 때로는 테러리스트들과 협상을 한다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테러리스트들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은 정부로 하여금 선택의 입지를 줄이게 만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영화에서도, 

테러리스트들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정부로 하여금 섬을 탈취한 이들을 타도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낳고,

이는 미숙한 전술운용으로 처참한 결과를 야기하죠.

그렇다고, 테러리스트들과의 협상이 꼭 좋다는 것만은 또 아닙니다.

특히,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함으로써 보상을 얻을 수 없게 해야한다.'라는 주장과 관련해서 그렇습니다.

만약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으로 이들이 어떤 금전적인 보상을 얻게 된다면, 

이들은 차후에도 어떠한 이득을 바라고 테러에 가담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렇게 된다면,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커질 확률 또한 올라가게 되지요.

때문에 정부는 테러리스트들의 폭력 활동으로 이들이 얻게될 어떠한 금전적인 이득도 없으며, 

오히려 잘못하다가는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함으로써 이들의 폭력에의 욕구를 억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테러에의 위협에 노출될 확률이 줄어드는 것이 되니, 

더 많은 이득을 가져오는 행동이 되겠지요.

그러나 인질, 혹은 테러의 희생자가 자신의 가족이라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 집니다.

이들과의 협상이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협상에 참여하지 않는 정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리게 되는 것이지요.

가족들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판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당장의 저로서도 우리 가족이 누군가에게 인질로 잡혀있다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군사작전 보다는 억만금을 주고라도 무사히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테러리스트들과 협상을 해야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될 성질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예전의 샘물교회 사건과 삼호주얼리호 사건의 경우에서처럼 상반된 결정이 이뤄지고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