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정치사상가 홉스는 [리바이어던(1651)]에서 인간과 사회와 국가에 대한 아주 새로운 사고를 전개했다.
이 책의 제13장 ‘인류의 행·불행에 관한 그들의 자연 상태에 대하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연은 인간을 신체와 정신의 능력 면에서 평등하게 창조했다.
… 인간이 이와 같은 평등성을 불신하는 것은 자신의 지혜에 대해 갖는 헛된 자만심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홉스는 인간의 평등성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평등한 조건 속에서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게 될 때 인간들 사이에는 불신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홉스는 이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태’로 묘사했다.
전쟁 상태 속에서 각 개인은 자연권(natural right)을 행사할 수 있다.
인간 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그 자연권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본성,
즉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듯이
자연권의 행사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한다.
이 모순적 상황은 인간 이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
홉스는 그것을 자연법(natural law)으로 명명했다.
이성은 인간에게 “평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따르라”(제1의 법),
“평화와 자신의 방어를 위해 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와 동시에 타인도 그렇게 생각할 때는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포기해야만 하며,
그가 타인에 허락한 만큼의 자유만 그도 타인에 대해 갖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제2의 법),
“인간들은 자신들이 맺은 신약(信約)을 이행해야 한다”(제3의 법)라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연법을 명령한다.
이러한 자연법의 명령에 따라 인간은 자신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사회계약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 계약의 본질은 계약에 참여하는 인간들이 자신의 권리를 특정한 인물
또는 집단에게 부여해서 그들의 의사를 단일한 형식으로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렇게 인간의 권리를 부여받은 단일한 정치체로서 국가가 성립한다.
계약에 의해 창조된 국가는
자신에게 부여된 힘과 권리를 구성원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홉스의 생각이다.
홉스의 사상은 몇 가지 점에서 매우 혁명적이다.
첫째, 고대와 중세의 개인은 자연적 또는 신적 공동체의 일부일 뿐
개인이 사적인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홉스의 사상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사회와 국가의 논리적 기초로 상정되고 있다.
둘째, 홉스의 사상에서 개인은 욕구와 능력 면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의 독점적 주체로 설정되어 있다.
이 또한 신분제적 질서가 지배했던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셋째, 국가는 인간의 본성을 구현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성립된 공동체라는
고대적 국가관 또는 신의 뜻을 지상에 실현하기 위해 건립한 세속적 정치체라는 중세적 국가관과는
근본적으로 단절된,
개인의 필요와 이익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국가관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과 국가에 대한 새로운 사고는 명백히 근대적인 사회·정치사상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홉스보다 조금 늦게 활동했던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 로크는 이러한 근대적인 사고를 한층 더 급진적으로 밀고 나갔다.
로크는 [통치론(1689)]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간은 완전한 자유와 자연법상의 모든 권리 및 특권을 간섭받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어떤 사람 또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평등하게 가지고 태어났다.”
이는 개인에 대한 홉스의 이해와 전적으로 일치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또한 로크는 홉스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천부적으로 지닌 자연권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확고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인간은 본래 타인의 침해와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재산,
곧 생명, 자유, 자산을 보존할 권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법을 위반한 것을 심판하고
그 위반 행위가 의당 치러야 한다고 자신이 확신하는 바에 따라 다른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권력도 가지고 있다.”
로크는 홉스와는 달리
인간들 사이의 전면적인 전쟁 상태를 가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이 자신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존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사회계약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회계약은 각 개인이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공동체에 자신들의 자연권을 양도하는 계약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중요하게 언급해야 할 사실은
홉스의 국가가 구성원들의 모든 자연권을 부여받아 절대 권력체로 탄생한 국가
(이런 차원에서 홉스의 국가는 성서에 나오는 엄청난 힘을 지닌 괴수인 ‘리바이어던’으로 불리고 있다)인 반면
로크의 국가는 단지 처벌권만을 부여받은 제한적 권력의 국가라는 점이다.
나아가 로크는 국가가 부여받은 권력의 분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국가가 막강한 권력을 지님으로써
오히려 구성원의 생명, 자유, 자산을 침해하게 될 가능성을 미리 방지하기 위함이다.
절대군주제에 대한 비판과 권력 독점에 따른 폐해 등에 대한 언급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국가가 본래의 목적을 위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판단될 때,
로크는 권력을 회수해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해줄 다른 곳에 그 권력을 맡길 것을 주문했다.
이는 곧 저항권의 정당화를 의미한다.
절대주의 국가사상을 제시한 홉스와는 달리 로크에게서는 자유주의 국가 사상의 본질적 측면을 볼 수 있다.
하상복, 푸코&하버마스/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64-67쪽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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