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불평등 기원론>의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에서는 행복하게 살았던 자연 상태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다채롭게 전개된다.
제2부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떠나고 인위적인 힘이 개입되면서 행복을 잃어가는 모습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옛날 원시 상태의 인간은 자연 환경에 잘 적응하며 건강하고 튼튼하게 살고 있었다.
일도 힘들게 많이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어서 말다툼을 할 필요도 없었으며,
굳이 서로 만나서 부딪히며 갈등을 빚을 일도 없었다.
다소 고독해 보였을지는 몰라도 그들은 자족하면서 살았다.
나아가 늘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았다. 즐거운 일만 하고,
아름다운 것만 쳐다보고, 행복한 생각만 하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악해서 자연 상태로 두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나타난다는
홉스의 성악설을 루소는 인정하지 않는다.
자연의 인간은 선악의 개념을 초월한 존재였다고 말한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선과 악의 상식적인 구별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에
악할 필요도 없었고 악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즉,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선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듯이
악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며,
그들에게는 악을 행할 조건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루소의 생각이다.
필요한 양식을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인간은
각자 원하는 곳으로 가서 자유롭게 먹고 즐기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누구를 구속하지도 않고 누구로부터 구속받지도 않았으며,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았다.
그런데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자연의 재해가 닥치고,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먹이 다툼을 벌이는 일들이 생기면서
자연과 인간 개개인의 독대를 통한 직접적 관계가 깨지고
점차 인간 사이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공동체가 형성되어갔다.
공동체 속에서 각 인간은 남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 존재가 상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좋고 나쁨이 생겨나고 선악이 나타나며 불평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힘이 있거나 재주가 있거나 말 잘하는 사람이 돋보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게 되었고, 드디어 사유물을 남보다 많이 지니게 되었다.
물건이나 땅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나누어 차지하면서 남보다 더 많은 힘을 갖게 되었다.
약삭빠르고 힘 있는 자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고 약한 자는 점점 더 상대적인 박탈을 겪게 되었다.
개인의 가치가 존재에서 소유의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생산수단의사유화가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을 소유에 종속시켰다.
루소가 볼 때 사유 재산제도야말로 인간 불평등의 뿌리이며 불행의 근원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루소가 살던 시대에는 너무 파격적인 것이어서 매우 큰 파문을 일으켰다.
신분제도와 사유재산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온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본래의 모습이 아니며 더 행복한 방법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하나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함께 친분을 나누며 백과사전 편찬에 참여한 디드로, 볼테르 등의 사상가들조차
그의 혁명적 사상을 소화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볼테르 같은 사람은 루소의 사유 재산제도에 대한 공격을 두고
거지 철학이라고 비판함으로써 그들 사이의 인간관계까지 깨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무튼 루소가 볼 때 인간의 불평등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들이 꼭 그렇게 불평등한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할 당위성도 없다.
사회의 질서는 새롭게 바꾸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공동체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더라도
지나친 불평등이 존재할 때 그것을 고쳐나갈 수는 있다.
그것이 순리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싸워서라도 해낼 수 있다.
루소가 상상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바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소외된 사람들은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서나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다시 얻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이런 상황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천진난만하던 인간이 어느새 악해지고 만 것이다.
악해질 대로 악해진 인간들 사이에서 무질서와 혼란이 증폭되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힘 있는 자나 말 잘하는 자나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약삭빠른 사람들은 묘안을 찾아냈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면서도 남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할 조건으로 계약을 맺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사회는 점차 안정되어 가는 반면
유리한 조건을 차지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인간의 불평등은 이렇게 고비 고비마다 더욱 인위적으로 제도화되면서 고착되어왔다.
결국 국가라는 제도가 생기면서
불평등은 매우 견고한 모습을 갖추어서 더 이상 누구도 거역하거나 도전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루소에 따르면 원천적으로 국가란 국민들의 일반 의사에 의하여 존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이 원하지 않는 제도는 순리에 맞지 않는 것이므로 타파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기존 질서는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루소의 주장들은 매우 혁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 장자크 루소, <인간불평등 기원론> 책세상 해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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